2008년 05월 08일
해석적 풀이와 수치적 풀이: 맥스웰의 물리적 유비
와인버그 75세 생일
와인버그 [우주론] 드디어 출간!
ExtraD님이 스티븐 와인버그의 새로운 책 [우주론]의 특징 중 하나로 "책은 매우 자세한 해석적(analytic) 계산을 보여주고 있으며, 물리학 현상에 대해 단순히 결과만 인용한 다른 책들과 다르다."라는 점을 강조했는데, 여기에 ddd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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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적 풀이와 수치적 풀이 사이의 관계는 맥스웰이 심각하게 논의했던 물리적 유비의 문제와 어느 정도 연결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 벌써 3시네요. 일단 여기에서 글은 멈춰야겠습니다. 나중에 더 채워넣도록 하죠. ^^ 어제밤에 여기까지 쓰고 잤는데, 아침에 회의하고 점심 먹고 잠시 쉬는 사이에 조금 더 채워보려 합니다. )
더 가기 전에 해석적 풀이(analytical solution)과 수치적 풀이(numerical solution)를 제가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지 분명하게 정의하고 가죠. 저는 해석적 풀이를 "주어진 방정식의 풀이를 알려진 수학적 함수로 나타내는 것"으로, 수치적 풀이를 "방정식의 풀이를 수치값의 표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앞의 것은 흔히 '닫힌 형태의 풀이'(closed-form solution) 내지 '엄밀한 풀이'(exact solution)라고 부르고, 뒤의 것은 종종 그래프를 그려내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위의 질문과 와인버그의 접근을 염두에 두면, 이 두 개념은 더 넓은 함의를 지닙니다. 수치적 풀이는 말 그대로 우리가 원하는 값(가령 입장의 붕괴율이나 산란단면적이나 주요 파라미터들)을 숫자로 또는 어떤 특정의 범위로 얻는 것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숫자로 표현된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에 반해 해석적 풀이를 얻기 위해서는 적절한 방정식을 '적분'할 수 있어야 하고, 우주론의 맥락에서는 구체적인 라그랑지안 밀도를 가지고 가능한 한 알려진 함수로 풀이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해석적 풀이는 라그랑지안 밀도의 잠정적인 가정과 직접 맞닿아 있습니다.
와인버그가 우주론에 대해 해석적 풀이를 시도한다는 것은 (아직 직접 보진 않았지만) 가령 인플라톤과 스칼라입자의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이러저러한 라그랑지안 밀도를 설정하고 그로부터 일종의 불변행렬 내지 S행렬을 구하거나 진공기대값 같은 것을 구한다는 뜻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래서 저는 와인버그의 해석적 풀이란 다름 아니라 맥스웰이 말하는 물리적 유비 내지 소위 '예시'(illustration)라고 보는 것입니다.
'예시'라는 말은 위의 벌집 모양의 헛도는 바퀴들로 전자기장을 모형화하려던 맥스웰이 즐겨 사용한 말입니다. 즉 그런 기계적 모형이 진짜로 전자기장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대신, 전자기장의 특정 성질이나 현상들은 그러한 기계적 모형을 통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물리적 유비'입니다. 단순히 수학적 공식을 써 놓거나 아니면 억측이 섞이 기계적 가설을 형이상학적으로(즉 존재론적으로) 가정하지 않고, 그 중간에서 수학적 공식을 끊임 없이 머리 속에서 떠올리는 동시에 눈에 보이는 (또는 더 익숙한) 다른 모형으로 이를 더 쉽게 예시하려는 것이죠. 이것은 교육적으로도 훌륭한 시도입니다.
그러나 물리적 유비 또는 기계적 모형이 잘 이해된다고 해서 "what's going on here?"라는 질문에 더 잘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충분히 훈련된 사람에게는 기계적 모형보다도 수학적 공식이 더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수치적 풀이와 해석적 풀이는 맥스웰의 논의에서는 어디쯤 들어갈까요? 저는 두 가지 측면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하나는 [수학적 공식 ---- 물리적 유비 ---- 기계적 모형의 가설]의 틀에서 수학적 공식을 두 종류로 나누는 것입니다. 이 때 수치적 공식은 기계적 모형의 가설과 거의 관련을 맺지 못하는 반면, 해석적 공식은 기계적 모형의 가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보는 거죠. 그렇게 볼 때, 수학적 공식 중에서는 수치적 공식보다 해석적 공식이 더 물리적 유비에 가깝게 됩니다. [수치적 수학적 공식 ---- 해석적 수학적 공식 ---- 물리적 유비 ---- 기계적 모형의 가설] 뭐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겠네요.
다른 측면은 해석적 풀이를 아예 기계적 모형의 가설에서 연역되는 것이라고 보는 생각입니다. 단순히 엄밀한 풀이를 찾는 게 아니라면, 수치적이든 아니든 공식은 그냥 공식일 뿐인 거죠. 와인버그가 신작 [우주론]에서 해석적 계산을 풍부하게 제시한다는 것은 다양한 기계적 모형의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흔히 해석적 풀이와 수치적 풀이 중 어느 것이 더 오래되었는가 하고 물으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해석적 풀이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원하는 풀이를 알려진 함수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기껏해야 18세기의 일입니다. 가령 오일러는 이런 노력에서 거의 독보적입니다. 예를 들어 이슬람을 통해 전해지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에는 아래와 같은 천문학 표가 나옵니다. 약간 거짓말을 보태자면, 이 표는 관측데이터를 좌르륵 써 놓고 55개 내지 92개의 주전원이 들어간 천구의 모형에서 나올 수 있는 행성의 좌표(고도와 방위각)를 좌르륵 써 놓고 서로 비교하는 내용입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연구(특히 물리학 내지 천문학)에 도입되면서, 수치적 풀이가 압도적으로 많아졌습니다. 19세기 동안 수학자들의 탁월한 성과를 통해 찾아낸 해석적 풀이만으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현상들의 '풀이'를 다 나타낼 수 없었던 것이죠.
제가 기억하는 챤드라세크하르의 중성자 별에 관한 계산은 엄청난 숫자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 모든 수치적 풀이의 계산을 찬드라세크하르는 일일이 연필과 공책으로 해 냈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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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버그는 과학철학의 맥락에서 보면 실재론자인 것 같지만 도구주의자 내지 경험주의자이고, 환원주의를 강력하게 주장하지만 그 속사정을 상세히 보면 창발성을 중시 여기는 특이한 물리학자입니다. 100년쯤 뒤에는 와인버그의 물리철학에 대한 책이 나올지도 모르죠. ^^
해석적 풀이와 수치적 풀이의 비교를 최근 100년 정도의 스케일로 보면, 1970년대 이후로 수치적 풀이의 지위가 훨씬 더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특히 우주론이나 입자물리학이 아니라 응집물질물리학이나 특히 전자구조이론의 맥락에서는 이미 해석적 풀이는 포기된 지 오래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으로 가면 더 그러한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해석적 풀이가 수치적 풀이보다 더 '물리적 이해'를 많이 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SU(2) X U(1)에 바탕을 둔 살람-글래쇼우-와인버그의 라그랑지안 밀도를 살람-글래쇼우-와인버그 이론이라 부를 수 있을지 생각을 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흔히 SU(3) X SU(2) X U(1)을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이라 부르는데, 여기에서 '모형'(model)이라는 것이 흔히 말하는 '이론'(theory)와 어떻게 같거나 다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자는 것이죠.
하여튼 해석적 풀이와 수치적 풀이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쉽게 양자택일로 갈 문제는 아니겠고, 더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by | 2008/05/08 02:22 | 과학과 철학 | 트랙백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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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엔 이해의 '수준'에 심각한 차이가 발생하리라 봅니다.
주어진 방정식에 대해 그것을 풀기만 하는 작업을 하는(하면되는) '현실적인 문제'에 왔을 때 많은 경우 수치해만이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수치해의 중요성을 낮게 보지는 않습니다만, 방정식을 얻는 단계까지 도달하기 까지는 다분히 해석적 성격을 띈다는 점도 잊으면 안되겠습니다.
실은 저도 수치해를 구하는 것이 아주 아주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라티스 이론만 보아도 입자물리학 연구에 수치계산 연구의 중요성은 충분히 인식되고 있지요.
ex) Randall-Sundrum model ~ Warped extra dimension scenario
수치적 풀이 말고 해석적 풀이를 구하고자 하는 이유는 소위 "What's going on here?"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당연히 이해의 수준에서 큰 차이가 있죠. 다만, 최근 100년간의 경향을 한발짝 떨어져서 보면, 과거보다 수치적 풀이의 지위가 올라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메모장에 시계를 달라는 말을 가지고 한참 고민을 하다가 10여분만에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죠. 다 덕분입니다~ ^^ 감사~
모형/이론/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저 같은 철학자의 입장에서는 과학자(입자물리학자)들의 용례 자체를 무시하지는 않더라도 거기에 많이 기대지는 않는 편이죠. 이 과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데카르트처럼 아예 자신의 틀을 먼저 세우고 거기에다 과학자들(데카르트 당시에는 과학자라는 것이 아예 없었죠 ^^)의 용례를 끼워맞추면 안 될테니까요.
참, 이번 여름에 포항공대에서 계절학기를 하게 되어 한 동안 포항에 있을 예정입니다. 6.24-26에 제주도에서 과학철학회가 있는데, 거기 가 보심이 어떨지요? ^^ 전화드립죠~
---> 청강이라니, 하하, 당치도 않으십니다~ ^^ (끝에 붙인 구절은 censor입니다요~ ^^ )
http://nyxity.com/wiki/wiki.pl/%ED%95%B8%EB%93%9C%EB%93%9C%EB%A6%BD